어렸을때는 어머니가 장만해주신 전집들이 방을 가득 채웠던 기억이 난다. 그 전집 중에는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을 가져다주는 책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너무 재미있어서 읽고 또 읽고,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을 가져다 주는 책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또 친구들이 폭 빠져 읽었던 만화책도 '슬램덩크'나 '드래곤볼'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그닥 기억에 남는 만화책도, 무협지도 없다. 주변에 널려있는 책들도 그저 '책이려니~'하는 마음으로 지긋이 바라만 볼뿐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와 책은 서로 다른 곳을 가리키는 나침반의 화살표인양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청소년 시절을 보내왔다.
대학에 들어갔다. 물론 책은 어렸을때와 마찬가지로 읽어야 한다는 막연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쉽게 손이 가는 대상은 아니였다. 그런데 전공이 사회학이었던 나는 사회학자들의 책을 접할때마다 내 독해력의 한계를 느끼며 한글로 써내려간 글들의 행간을 파악하기 위해 읽고 또 읽고 또 읽어야만하는 암담한 현실을 감수해야만 했다. 서글펐다. 내가 한글을 읽고 쓰고 말한지 20년이 넘었건만 한글로 써진 글들이 읽히지가 않다니.... 저자와 역자들을 어찌 이렇게 어렵게만 써놨을까를 탓해보기도 했지만.... 주위에 다른 친구들은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닌듯 보였다. 부끄러워 남들에게 말도 잘 못하고 그저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읽고 또 읽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대학 때 성적이 쥐구멍을 찾아들어간지도 오래...
군대에 가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조정래씨의 태백산맥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아리랑, 그리고 한강. 정말 감탄을 자아내는 구성과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30권에 달하는 책들을 단숨에 읽게 만들었다. (물론 지금도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린 내 입장에서 단숨에는 많은 시간을 의미한다) 아! 이게 책 읽는 매력이구나!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너무 책과 거리를 두고 살았구나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당시의 읽은 여러 책들과 또 학과 전공 서적들이 지금의 나의 사회적 관점을 형성해 가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또 이후 많은 책들을 읽으려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습관화 되지 않은 독서 생활은 마음먹은 것과는 달랐다. 일단 책을 읽기는 했지만 읽는 행위로 그냥 끝이 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좋은 책도 마무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읽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중요한 문구나 내용조차도 반복되지 않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해야되는 필요성은 알고 있지만, 게으른 몸이 따르지 않는 핑계로 중요한 과정들을 지나쳐버린 것이다. 이러한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효과적인 독서방법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 좀 나아지려나 싶어 독서와 관련된 자기 계발서들도 읽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글을 주체적으로 '읽는' 것에 체화되지는 못했다.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고 또 육체적 게으름도 고쳐지지 않았다. 책꽂이에는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도 한가득이다.
오늘 어떤 글에서 '책을 읽으려면 책을 왜 읽는가?에 대해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쓴 사람의 주관성이 묻어있는 말이지만, 나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글쓰는 노하우를 배우려고? 유식해보이려고? 책꽂이에 책이 많이 있으면 있어보이니까? 책이라도 읽어야 시대에 뒤쳐진다는 느낌이 덜어질까봐? 아이들에게 책보라는 말을 하기가 민망하니까?(충분히 민망하다) 성인 한사람이 읽는 평균 독서량보다는 많이 읽으려고? 남은 삶에 좀더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시간 남을때 서점가서 시간때우려고? 정말 어떤 것때문에 내가 책을 읽는 것인가?
위의 모두가 답인것 같다. 너무 부끄럽다. 책을 왜 읽는걸까?
오늘도 큰 숙제를 갖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갔다. 물론 책은 어렸을때와 마찬가지로 읽어야 한다는 막연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쉽게 손이 가는 대상은 아니였다. 그런데 전공이 사회학이었던 나는 사회학자들의 책을 접할때마다 내 독해력의 한계를 느끼며 한글로 써내려간 글들의 행간을 파악하기 위해 읽고 또 읽고 또 읽어야만하는 암담한 현실을 감수해야만 했다. 서글펐다. 내가 한글을 읽고 쓰고 말한지 20년이 넘었건만 한글로 써진 글들이 읽히지가 않다니.... 저자와 역자들을 어찌 이렇게 어렵게만 써놨을까를 탓해보기도 했지만.... 주위에 다른 친구들은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닌듯 보였다. 부끄러워 남들에게 말도 잘 못하고 그저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읽고 또 읽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대학 때 성적이 쥐구멍을 찾아들어간지도 오래...
군대에 가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조정래씨의 태백산맥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아리랑, 그리고 한강. 정말 감탄을 자아내는 구성과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30권에 달하는 책들을 단숨에 읽게 만들었다. (물론 지금도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린 내 입장에서 단숨에는 많은 시간을 의미한다) 아! 이게 책 읽는 매력이구나!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너무 책과 거리를 두고 살았구나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당시의 읽은 여러 책들과 또 학과 전공 서적들이 지금의 나의 사회적 관점을 형성해 가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또 이후 많은 책들을 읽으려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습관화 되지 않은 독서 생활은 마음먹은 것과는 달랐다. 일단 책을 읽기는 했지만 읽는 행위로 그냥 끝이 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좋은 책도 마무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읽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중요한 문구나 내용조차도 반복되지 않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해야되는 필요성은 알고 있지만, 게으른 몸이 따르지 않는 핑계로 중요한 과정들을 지나쳐버린 것이다. 이러한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효과적인 독서방법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 좀 나아지려나 싶어 독서와 관련된 자기 계발서들도 읽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글을 주체적으로 '읽는' 것에 체화되지는 못했다.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고 또 육체적 게으름도 고쳐지지 않았다. 책꽂이에는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도 한가득이다.
오늘 어떤 글에서 '책을 읽으려면 책을 왜 읽는가?에 대해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쓴 사람의 주관성이 묻어있는 말이지만, 나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글쓰는 노하우를 배우려고? 유식해보이려고? 책꽂이에 책이 많이 있으면 있어보이니까? 책이라도 읽어야 시대에 뒤쳐진다는 느낌이 덜어질까봐? 아이들에게 책보라는 말을 하기가 민망하니까?(충분히 민망하다) 성인 한사람이 읽는 평균 독서량보다는 많이 읽으려고? 남은 삶에 좀더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시간 남을때 서점가서 시간때우려고? 정말 어떤 것때문에 내가 책을 읽는 것인가?
위의 모두가 답인것 같다. 너무 부끄럽다. 책을 왜 읽는걸까?
오늘도 큰 숙제를 갖게 되었다.